
네 번째 생각 :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언어입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우리 직지의 금속활자는 제작에 있어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알파벳, 문장부호, 특수문자 등 모두 합쳐서 60자 정도만 만들면 되었지만, 우리는 한자 문화권이라 수천 개가 넘는 한자를 일일이 활판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제작 운용에 있어서 글자체계에 따라 대중성을 띠는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자는 의사소통하는 기본적인 틀인데 이 틀이 복잡하고 많으면 대중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쇄 역사에서 구텐베르크라는 이름은 많은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직지에 대해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71년에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PG)’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자료를 모아서 전자정보로 저장하고 배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인터넷에 전자문서(e-text)를 저장해 놓고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가상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1990년대 들어 스캐닝과 OCR기술에 힘입어 수많은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직지’가 아니라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인 우리 한글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한글은 최적의 언어입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체계적으로 조합되어 있습니다. 휴대전화 자판은 숫자 0~9, 기호 *, # 등 1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 세계 표준입니다. 이 표준에 가장 적합한 글자가 한글입니다. 기본 자음과 모음이 8개에, 획과 쌍자음 버튼만 누르면 모든 글자를 빠르게 조합할 수 있습니다. 영어는 자판 하나에 3~4개의 글자를 할당해야 하므로 여러 번 눌러야 합니다. 모바일 시대에 스마트폰 비즈니스가 발전하는데 있어 한글의 우수성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즈음은 텍스트를 손가락으로 입력하는 것이 불편하여 핸즈프리로 음성으로 입력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글은 글자와 소리가 일대일로 매칭되는 언어라 글자를 소리로 바꾸거나, 소리를 글자로 바꾸는 데 탁월합니다. 구글이 음성인식 문자 입력 서비스를 영어와 스페인어 다음으로 우리 한글을 출시했다고 합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지만 이들의 언어보다 우리 언어를 먼저 시작한 이유는 한글이 쉽고, 과학적이어서 음성인식을 개발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600년 전에 이미 바라보셨던 것은 아닐까?
다섯 번째 생각 : 개방적, 비판적 사고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은 중세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근대사회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유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루터는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카톨릭의 오류에 대해 95개 반박문을 정리하였습니다. 루터가 처음부터 종교개혁하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반박문이 인쇄가 되어 전 유럽에 보급되자 대중의 힘이 종교개혁으로 이끈 것입니다. 어려운 라틴어는 인문주의자들이 번역하여 일반 대중들도 책을 접하며 정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천동설 패러다임에 갇혀있던 사회에서, 생각하고(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경험하고(신대륙 발견), 비판하면서(프랑스혁명) 주요 철학과 과학적 발견(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개방적 비판적 사고를 가장 격려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 세계의 밤을 낮같이 변화시킨 에디슨, 인간의 활동 영역을 글로벌하게 확장시킨 라이트 형제나 자동차의 왕 포드는 모두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들입니다. 밤이라고 어두워야만 하는가? 왜 천사만 하늘을 나는가, 사람은 날 수 없는가? 사람이 움직이지 말고 차가 움직이면 안되는가?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ly)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은 참 우수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열린 마음이 부족하여 글로벌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유럽은 인쇄기 발명 후 수천만권 이상 책이 인쇄된데 반해, 우리의 금속활자로는 수십부 정도의 책을 인쇄하는데 그쳤습니다. 세계 최고의 한글이 발명되었는데도, 천한 백성들이나 쓰는 글로 전략시켰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과학기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화포,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의 개척정신 등으로 얼마든지 부강하여 밖으로 펼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당파적인 이득에만 몰두하지 않았던가요? 일본은 1860년대 서양 문물이 노크했을 때 정부의 전체 내각이 유럽, 미국을 찾아가면서 과학기술을 빨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스펀지처럼 빨아드린 기술로 제국주의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기술 습득에 배타적이었던 우리나라는 이들 제국주의의 노략거리가 되고 역사적인 비극과 수치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개인이든 회사든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보고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승자(勝者)가 되는 길입니다.
인쇄술의 발달은 계속되었습니다. 19세기 초 신문 발행이 크게 늘면서 대량 인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자 유럽에서 원압기(원통을 돌려 찍는 것)와 윤전기(두루마리 종이에 원통을 돌려 찍는 것)를 잇따라 개발하게 됩니다.
20세기에는 컴퓨터에 입력한 글자를 활자 없이 곧장 뽑아내는 잉크젯 프린터(가느다란 잉크 줄기를 종이에 뿌리는 것), 레이저 프린터(잉크 가루를 레이저로 쏘는 것)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루를 뿌려 굳혀가며 모양을 쌓아올리는 방식의 3D 프린터까지 등장합니다. 페이퍼리스(paperless)가 대세이지만 기록, 보관, 백업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쇄는 지금까지의 양상과는 크게 다르겠지만 그 산업의 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